명절이 해마다 자리를 옮기는 까닭
유월절이나 하누카의 날짜를 그레고리력으로 확인해 보면 해마다 며칠씩 앞뒤로 움직입니다. 어떤 해에는 3월에, 어떤 해에는 4월에 유월절이 오는 식입니다. 들쭉날쭉해 보이는 이 움직임에는 사실 정교한 계산이 깔려 있습니다. 유대 달력이 태양만 따르는 그레고리력과는 다른 원리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달과 해를 함께 따르는 구조
유대 달력은 태음태양력입니다. 한 달의 길이는 달이 차고 기우는 주기에 맞추고, 한 해의 길이는 태양의 주기에 맞춥니다.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데 약 29.5일이 걸리므로 각 달은 29일과 30일을 번갈아 가집니다. 이렇게 열두 달을 채우면 한 해가 약 354일이 되어, 태양력의 365일보다 열흘 남짓 짧아집니다. 두 천체의 주기를 한 달력 안에 욱여넣으려는 시도가 이 구조의 출발점입니다.
음력만 쓰면 계절이 밀린다
이 열흘의 차이를 그냥 두면 문제가 생깁니다. 해마다 명절이 계절을 거슬러 앞당겨지기 때문입니다. 봄에 지내야 할 유월절이 몇 해만 지나면 겨울로, 다시 가을로 흘러가 버립니다. 이슬람 달력이 순수 음력이라 라마단이 사계절을 떠도는 것이 바로 이 현상입니다. 그런데 유대교의 여러 명절은 특정 계절에 단단히 묶여 있어 이런 표류를 허용할 수 없었습니다.

윤달이라는 해법
해결책은 가끔 한 달을 통째로 끼워 넣는 것이었습니다. 윤년이 되는 해에는 아다르라는 달이 둘로 나뉘어 아다르 1과 아다르 2가 되고, 그만큼 한 해가 13개월로 늘어납니다. 이렇게 더해진 한 달이 어긋나기 시작한 계절을 제자리로 끌어당깁니다. 하루를 더하는 그레고리력의 윤년과 달리, 여기서는 한 달을 통째로 더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19년에 일곱 번
윤달을 아무 해에나 넣는 것은 아닙니다. 19년을 한 주기로 삼아 그 안의 정해진 일곱 해, 즉 3, 6, 8, 11, 14, 17, 19년째에 윤달을 둡니다. 이 19년 주기는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이미 알려져 있던 것으로, 음력 235개월이 태양력 19년과 거의 정확히 맞아떨어진다는 천문학적 사실에 기댄 장치입니다. 봄 명절을 봄에, 가을 명절을 가을에 붙잡아 두려는 오랜 조정의 결과입니다. 계산의 세부는 위키피디아의 Hebrew calendar 항목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새 달이 곧 새 달을 연다
본래 한 달의 시작은 사람이 직접 초승달을 관측해 정했습니다. 증인이 새로 뜬 달을 보고 증언하면 그날이 월초로 선포되었습니다. 윤달을 넣을지 여부도 농작물이 익는 정도 같은 실제 자연 현상을 보고 결정했습니다. 그러다 70년 무렵부터 1178년 사이에 이 경험적 판단이 점차 수학 규칙으로 대체되어, 오늘날에는 고정된 계산식에 따라 달력이 운영됩니다. 유월절의 의미를 매년 식탁에서 되짚는 하가다의 서사도 이 달력이 봄에 정확히 자리를 잡아 주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지금이 5786년인 이유
유대 달력의 연도는 그레고리력과 전혀 다른 숫자를 씁니다. 전통적인 계산에 따라 세상이 창조되었다고 보는 시점부터 햇수를 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레고리력 연도에 약 3760을 더하면 유대력 연도가 됩니다. 새해인 로쉬 하샤나가 가을에 오므로, 같은 그레고리력 한 해 안에서도 두 개의 유대력 연도가 걸쳐 있게 됩니다. 이 햇수는 정밀한 역사 연표라기보다 전통이 합의한 출발점에 가깝고, 정작 중요한 것은 절대 연도가 아니라 끊기지 않고 이어져 온 셈의 연속성입니다.
달이 새로 시작되는 날에도 이름이 있습니다. 로쉬 호데쉬, 곧 “달의 머리”라 불리는 이 날은 작은 명절처럼 다뤄져, 회당에서 특별한 기도를 더하고 일부 공동체에서는 가벼운 축일로 지냅니다. 한 해의 큰 명절뿐 아니라 매달의 첫날에도 표지를 붙여 두는 셈입니다.
특정 요일을 피하는 규칙
고정된 계산식으로 넘어온 뒤에도 달력에는 미묘한 조정이 남아 있습니다. 로쉬 하샤나가 특정 요일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루를 미루는 규칙이 대표적입니다. 속죄일이 안식일 바로 앞이나 뒤에 붙어 이틀 연속으로 노동과 조리가 멈추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새해의 시작일 자체를 조절합니다. 천문 계산과 종교 생활의 편의가 맞물려 만들어진 절충입니다.
두 개의 시간표를 동시에 산다
오늘날 이스라엘에서 유대 달력은 종교 절기와 민간 공휴일을 정하는 공식 달력으로 그레고리력과 나란히 쓰입니다. 한 사회가 두 개의 시간표를 겹쳐 사용하는 셈입니다. 한 주의 리듬을 샤바트로 끊어 내듯, 한 해의 리듬은 이 태음태양력이 짭니다. 절기와 달력의 관계를 더 넓게 보려면 브리태니커의 Jewish religious year 항목이 참고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