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 Shalom Editorial
הר שלום · Peace Mountain

우연을 보는 유대 전통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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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에 모든 걸 맡기는 게임

카지노 게임 가운데 어떤 것들은 플레이어가 실력을 발휘할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바카라는 일단 베팅을 하고 나면 정해진 규칙대로 카드가 까일 뿐이고, 룰렛의 구슬이나 슬롯머신의 회전도 사람이 손쓸 수 없는 영역에서 결과가 정해집니다. 이런 순수한 운 게임 앞에서는 누구나 똑같이 무력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결과를 통제할 수 없음”이라는 지점이, 유대 전통이 오래 들여다본 주제와 맞닿습니다. 운에 무언가를 맡긴다는 것을 이 전통은 어떻게 이해했을까요.

같은 우연, 정반대의 의미

흥미로운 점은, 유대 전통이 우연에 맡기는 행위를 한 가지로 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한쪽 끝에는 고랄, 곧 제비뽑기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제비는 도박이 아니라 신의 뜻을 듣는 경건한 절차였습니다. 속죄일에는 두 마리 염소를 두고 제비를 뽑아 어느 쪽을 바칠지 정했고, 가나안 땅을 지파별로 나눌 때도 제비로 결정했습니다. 제비뽑기를 다룬 글에서 보았듯, 여기서 우연은 인간의 자의를 비우고 더 높은 결정에 자리를 내주는 통로였습니다. 결과를 통제할 수 없다는 바로 그 점이, 오히려 신성함의 근거가 된 것입니다.

반대쪽 끝에는 돈을 걸고 즐기는 도박이 있습니다. 똑같이 운에 결과를 거는 일인데도 이쪽은 전통적으로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습니다. 탈무드는 상습적인 노름꾼을 법정의 증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우연을 신의 뜻을 듣는 자리에 둘 때와 한낱 오락의 판돈에 둘 때, 그 의미가 완전히 갈렸던 셈입니다.

진 사람의 돈은 누구 것인가

노름꾼을 미덥지 않게 본 이유 가운데 자주 인용되는 것이 돈의 성격에 관한 논리입니다. 베팅에서 진 사람은 애초에 돈을 내줄 마음으로 건 것이 아니라 딸 것을 기대하고 걸었으므로, 그가 잃은 돈은 온전히 합의된 양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부 견해는 딴 돈을 절도에 가깝게까지 보았습니다. 이긴 사람이 도덕적으로는 진 사람이라는 표현도 여기서 나옵니다. 도박을 도덕 감정이 아니라 소유와 합의의 문제로 분석한다는 점이 독특합니다.

카지노와 복권은 좀 다를까

이 논리를 따라가면 후대에 미묘한 구분이 생깁니다. 슬롯머신이나 룰렛, 바카라처럼 플레이어가 사람이 아니라 운영 측을 상대하는 경우, 또 정해진 기금에서 당첨금이 나오는 복권의 경우에는, “진 상대의 동의 없는 돈”이라는 문제가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해석이 있었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맞붙어 한쪽의 손해가 곧 다른 쪽의 이익이 되는 내기와는 결이 다르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랍비는 복권을 금하지 않았고, 자선 기금 마련을 위한 추첨은 공동체에서 널리 행해지기도 했습니다. 같은 베팅이라도 누구의 주머니에서 돈이 오가느냐를 따져 선을 그은 셈입니다.

노력과 맡김 사이

그러나 율법의 허용 여부와 별개로, 우연에 삶을 거는 태도 자체를 향한 더 깊은 경계가 있었습니다. 유대 사상에는 히쉬타듯과 비타혼이라는 두 축이 있습니다. 히쉬타듯은 사람이 마땅히 기울여야 할 노력이고, 비타혼은 그 결과를 신께 맡기는 신뢰입니다. 이상적인 삶은 정직하게 애쓰되 결과는 내려놓는, 이 둘의 균형으로 그려집니다. 도박은 바로 이 균형을 무너뜨리는 행위로 여겨졌습니다. 노력의 자리를 통째로 운에 넘겨버리기 때문입니다. 정직한 노동으로 얻은 돈을 강조하는 체다카의 가치관과 정반대 지점에 놓이는 셈입니다. 도박을 둘러싼 이런 논의는 유대 통신사 JTA의 정리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비법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

여기까지 오면, “유대인에게 운 게임의 특별한 비법이 있다”는 식의 호기심은 자연스럽게 방향을 잃습니다. 바카라 같은 순수 운 게임에는 애초에 통하는 기술이라는 것이 없고, 유대 전통의 관심사도 “어떻게 이길까”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 전통이 천착한 것은 통제할 수 없는 결과를 인간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였습니다. 제비처럼 더 높은 뜻을 듣는 자리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노력을 갈음하는 도피로 흘려보낼 것인가 하는 물음이었죠. 운을 대하는 비법이 아니라 운을 대하는 태도, 그것이 이 오래된 사유의 진짜 주제였습니다. 도박을 보는 시선에 관한 더 자세한 설명은 Chabad.org에서 이어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