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 Shalom Editorial
הר שלום · Peace Mountain

메주자, 문설주에 붙은 작은 두루마리

문설주에 손을 대는 사람들

예루살렘이나 텔아비브의 주택가를 걷다 보면 현관 오른쪽 문틀에 비스듬히 붙은 작은 케이스를 자주 보게 됩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거기에 손가락을 살짝 대고 그 손에 입을 맞추는 장면도 드물지 않습니다. 이 물건이 메주자(mezuzah)입니다. 히브리어로 메주자는 본래 “문설주” 자체를 가리키는 단어였지만, 지금은 문설주에 부착하는 그 물건을 부르는 이름으로 굳어졌습니다. 이름이 자리에서 물건으로 옮겨 간 흔적인 셈입니다.

parchment scroll

케이스가 아니라 안쪽이 본체다

메주자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바깥의 장식 케이스가 아니라 그 안에 말려 들어간 양피지입니다. 이 양피지를 클라프(klaf)라고 부릅니다. 케이스는 금속이든 나무든 도자기든 유리든 무엇으로 만들어도 상관없지만, 안의 양피지가 규정대로 쓰이지 않았다면 그 메주자는 효력이 없는 것으로 봅니다. 화려한 겉모습이 아니라 손으로 적은 한 장의 글이 이 물건의 실체입니다.

두 구절, 셰마의 일부

클라프에는 토라의 두 대목이 적힙니다. 신명기 6장 4절부터 9절, 그리고 11장 13절부터 21절입니다. 앞 대목은 유대교 신앙고백의 핵심인 셰마로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로 열리는 이 문장은 끝에서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라”는 명령으로 이어집니다. 메주자는 바로 이 한 구절을 글자 그대로 실행한 결과물입니다. 상징이나 비유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문장을 그대로 따른 것입니다.

소페르가 한 글자씩 쓴다

클라프는 인쇄물이 아닙니다. 소페르라 불리는 전문 필경사가 깃펜과 특수 잉크로 한 글자씩 직접 씁니다. 글자 하나가 빠지거나 뭉개지면 그 양피지는 무효가 됩니다. 그래서 정통파 가정에서는 몇 년에 한 번씩 클라프를 펼쳐 글자가 상하지 않았는지 점검합니다. 양피지 뒷면에는 보통 신의 이름 가운데 하나인 샤다이를 적고, 케이스 겉면에도 그 첫 글자인 신(ש)을 새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작 과정과 규정은 My Jewish Learning의 설명에 자세히 정리되어 있습니다.

문지방이라는 경계

들어갈 때와 나갈 때

메주자가 굳이 문틀에 걸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문은 안과 밖이 갈리는 자리이고, 사람이 하루에도 몇 번씩 통과하는 지점입니다. 집에 들어설 때 어떤 가치를 안고 들어오는지, 집을 나설 때 무엇을 들고 나가는지를 그 순간마다 환기시키려는 장치인 셈입니다. 손을 대고 입을 맞추는 관습도 부적을 매만지는 행위라기보다, 경계를 지날 때 잠시 멈춰 의식을 다잡는 동작에 가깝습니다.

욕실에는 걸지 않는다

집 안 거의 모든 방 입구에 메주자를 붙이지만 욕실과 화장실은 예외입니다. 신의 이름이 적힌 양피지를 부정한 공간에 두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입니다. 작아 보이는 이런 단서가 메주자를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율법(할라카)의 영역에 속한 물건으로 자리매김합니다.

왜 비스듬히 붙일까

메주자가 수직도 수평도 아닌 비스듬한 각도로 붙는 데에는 중세의 논쟁이 깔려 있습니다. 11세기 학자 라시는 수직으로 세워야 한다고 보았고, 그의 손자 라베누 탐은 수평으로 눕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후대의 아슈케나지 공동체는 양쪽 견해를 모두 존중하는 절충안으로 비스듬히 기울이는 방식을 택했고, 위쪽이 방 안을 향하도록 두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사소해 보이는 각도 하나에도 해석의 역사가 응축되어 있습니다. 이런 논쟁과 변천은 위키피디아의 메주자 항목에서 더 따라갈 수 있습니다.

집 한 채에서 도시의 문까지

메주자를 붙이는 범위는 시대에 따라 넓어졌습니다. 본래 토라의 명령은 집과 성문을 가리켰지만, 13세기 학자 마이르 폰 로텐부르크 무렵부터 회당이나 사무실 같은 비주거 건물의 입구에도 메주자를 다는 관습이 퍼졌습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에서는 관공서, 상점, 학교의 문틀에서도 메주자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한 가정의 신앙 표지로 출발한 물건이 공동체의 공간 전체를 표시하는 장치로 확장된 것입니다.

현대에 와서는 클라프를 점검해 주는 일이 하나의 전문 영역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잉크가 갈라지거나 글자가 흐려진 양피지를 가려내려면 훈련받은 검수자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작은 양피지 한 장을 수백 년 동안 유효하게 관리해 온 이 꼼꼼함이, 메주자를 단순한 상징 이상으로 지탱해 온 힘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보호 부적이라는 오해

메주자를 행운이나 액막이 부적으로 여기는 시선이 흔하지만, 전통적인 해석은 그쪽에 무게를 두지 않습니다. 일부 공동체가 보호의 의미를 덧붙이긴 했어도 본래 명령의 무게는 “기억하라”에 있습니다. 매일 드나드는 공간의 리듬 속에 신앙의 언어를 새겨 넣는 방식인데, 이는 한 주의 리듬을 의례로 짜는 샤바트 식탁의 발상과도 닿아 있습니다. 시간을 구획하는 장치가 샤바트라면, 공간을 구획하는 장치가 메주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메주자는 종종 인테리어 소품이나 이스라엘 여행 기념품으로 소비됩니다. 그러나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고 왜 비스듬히 붙는지를 알고 나면, 이 작은 상자가 유대인의 일상에서 지니는 무게가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